2012.08.31

2012/08/31 00:06 / My Life/Diary
  우리나라 야구계의 명장이자 야신이라고 불리는 김성근 감독. 나는 그의 부인 오효순 씨와 한때 가족처럼 지냈어. 교회도 함께 다녔지. 게다가 한 가사도우미가 오전 오후로 나눠 양쪽 집안일을 했으니까 꼭 한 식구 같았지.

  오효순 씨가 어느 날 일본에서 시어머니가 오셨다고 집으로 놀러오라고 해. 나는 효순 씨에게 시어머니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은 터라 정말 보고 싶었어. 한달음에 달려갔지. 시어머니가 방에 자리 잡고 앉아 계시는데 꼭 궁중에 계시는 마마님이 오신 것 같더라고. 곱고 엄격해 보이는 외모에 단정한 자세. 일본에서 교포라는 신분차별 때문에 고생하신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지.

  그분의 자식 사랑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어. 그분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애인하고 헤어지는 것보다 더 아쉬웠어.

  그분은 혼신을 다해서 자식을 지켜내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한 말씀 한 말씀이 그대로 에너지를 만들어내시는 분이었지. 내 두 손으로 그분의 손을 맞잡고 나도 그 열을 전해 받고 싶었어.

  며느리가 다니는 교회에 매주 오는 교인처럼 하나도 어색함이 없이 나오셨어. 그분은 일본에서는 불교 신자셨어. 며느리의 종교를 존중해주는 그 큰 마음. 나는 내 인생 10년을 그분께 선물로 드리고 싶었어.

  만나고 헤어질 때까지 두 손으로 그분의 손을 잡고 땅에 떨어질세라 그분의 아들 사랑 이야기를 들었어.

  그 어머니를 보면서 오늘의 김성근 감독이 홀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 일본 땅에서 서럽고 힘겹게 키운 자식이 어느 날 한국으로 떠나버렸을 떄 어머니는 통곡했다고 해. 매일 절에 가서 부처님 앞에 오롯이 기도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일어날 때는 치마 앞자락이 흥건히 젖어 있었대.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이렇게 울고만 있으면 안 되지 싶어 산에서 조그만 새끼나무 하나를 가져와 추녀 밑에 심었대. 그때부터 ‘저 나무가 우리 성근이다’라고 생각하며 나무를 정성껏 돌봤다고 해. 바람이 불면 넘어지지 않게 기댈 것을 만들어주고 목말라 하기 전에 물을 주고 눈보라가 치면 거적으로 둘러주고. 그러면서 어머니는 기도했지. 며느리 오효순 씨는 결혼하고 일본에 가서야 그 나무에 대해 알았대.

  “아이야, 저 나무가 성근이 나무다.”
 
  효순 씨는 나무가 얼마나 잘 생기고 곧게 자랐던지 놀랐다고 해. 그때 효순 씨는 저렇게 공들여 키운 아들을 내가 잘 섬기고 내조해야겠다고 결심했대. 야구 한다고 일 년에 두세 번밖에 집에 안 들어와도 효순 씨는 불평하지 않았대.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해 가족을 지키려고 성실하게 산 사람.
 
  김성근 감독은 여자 복이 많은 사람이야. 어머니를 잘 만났고 두 번째 여자인 아내를 잘 만났어. 오효순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가려고 기다리다 김성근 감독에게 반해 유학 보따리를 풀어버리고 결혼한 사람이야. 성격 좋고 신앙심 깊고 자식 사랑 뜨거운 이런 나래를 만난 것도 그 어머니의 힘이 아니었을까?
 
  김성근 감독의 어머니는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계셨어. 그러나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은 거리를 초월해. 먼 곳에 있어도 낮이고 밤이고 연료 공급이 되고 있었던 거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말이야. 아들이 그것을 느끼고 좋은 연료를 공급받아 오늘의 큰 나무가 된 거야.


  엄마는 자식을 바라볼 때 평안해야 돼. 아이가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불안과 고통을 어디서 위로받을 수 있겠어? 엄마 가슴밖에 없어.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어때? 엄마 눈이 감시카메라가 되어 성적표 감시, 휴대전화 감시, 공부방 감시. 마음 같아서는 할 수만 있으면 자식 마음속까지  MRI로 찍어보고 싶을 거야.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는 항해를 하지 못해. 아이는 거친 파도를 헤치면서 세상을 배워야지. 거친 파도와 맞서다 잠시 무인도에 떨어질 수도 있고 표류를 할 수도 있어. 그대로 스스로 항해하게 아이를 거친 파도로 내보내야 돼.
 
  매일 힘든 여정을 보내고 아이는 지친 몸으로 엄마의 품으로 돌아와.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엄마가 전해주는 사랑의 기름을 넣고 다음날 또다시 거친 세상으로 나가는 거야. 그래서 엄마의 가슴은 기름탱크야.
 
  특히 아이는 학교로, 부모는 직장으로 나가는 아침 시간에 다정하게 헤어져야 돼.
 
  잠깐이라도 안아주고, 격려의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주어야 돼.
 
  이것이 서로에게 좋은 기름(사랑과 신뢰)을 넣어주는 방법이야. 이런 기름을 넣고 나간 아이는 그 기름 덕분에 밖에서도 평안하게 놀아.
 
  형편상 거리가 떨어져 있을 때도 기름은 얼마든지 넣어주고 공급받을 수 있어. 이렇게 기름 공급이 잘 이루어질 때 가족의 결속력이 강해지지. 항상 손잡고 한 집에 붙어 있다고 결속이 잘 되는 것이 아니야.
 
  이제 가족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어. 엄마는 집에 있고 아버지는 돈 벌러 나가고, 그런 시대는 가버렸어.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보이지 않게 기름을 서로 공급하면서 자기 세계를 향해 가는 것이지.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잘해줄 때 결속력은 강해지는 거야.
 
  ㅡ 양순자, 「어머니의 가슴은 절대 차면 안 된다.」, 『어른공부』, pp.114-119
2012/08/31 00:06 2012/08/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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