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20

2010/09/20 01:16 / My Life/Diary
비 오는 날, 밖을 나섰다가 도를 찾는 여성 2인조를 만났다. 예전에는 여성 도인들은 남성들에겐 말을 잘 걸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한 명은 크고 한 명은 작았는데, 작은 쪽이 나를 불러 세운다.

ㅡ 저기요, 무척 특별한 느낌이 전해져요.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그렇게 순진하게 말하지 말아줘요…
ㅡ 저도 압니다. 하하.
내게 말을 거는 작은 쪽보다 뒷편의 키 큰 여자쪽이 더 이쁘다. 수줍은건지, 견습생인건지 말이 없다. 작은 여자가 나와 눈을 맞춘다.
ㅡ 아무래도 천운을 타고 나신 것 같은데요.
ㅡ 저 어제 로또도 안 됐는데요.
ㅡ 그게 왜 그런지 저희랑 잠깐 얘기를 하시면…
키 큰 여자는 여전히 이쁜데, 여전히 말이 없다.
ㅡ 버스가 와서 전 그럼….

우산을 세우고 돌아서면서, 잡아주길 바랬다. 이왕이면 키 큰 여자가. 비 오는 날의 도담(道談), 어쩐지 낭만적이지 않은가. 바닥에 고인 빗물을 피하는양 일부러 천천히 걸었는데 따라오지 않는다. 특별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며 왜 날 그냥 보내는 거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았다. 비 오는 날 버스 타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버스 천장을 치는 빗소리, 앞 유리창에 흘러 내리는 빗줄기, 간간이 와이퍼가 지나가면서 그걸 다 지워버리는 일. 아스팔트 도로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더 높게 튀어올라 부서진다. 가만 보고 있으면 같은 자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하나도 없다. 한산한 거리, 버스가 속도를 낸다.

슈퍼에서 맥주 한 캔이랑 요플레 한 팩, 감자칩을 샀다. 요플레 하나를 스푼으로 떠먹고, 하나는 감자칩에 발라 먹고, 두 개는 냉장고에 넣었다. 양준혁 은퇴식을 보면서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 잠들었다 깼다. 아직도 밖엔 비가 내린다. 냉장고를 열어 요플레 두 개를 꺼내 떠먹는다.

맛있다.

2010/09/20 01:16 2010/09/20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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