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1

2010/10/21 21:28 / My Life/Diary
1.
다섯 살 난, 아니 여섯 살이라고 할까ㅡ 사내 아이를 데리고 사는 싱글맘. 한 남자를 만난다. 서로의 사랑이 깊어지고. 어쩌면 남자가 더 빠져들었는지 모르지. 어느 날. 둘만의 술자리. 여자에게 갑자기 걸려온 전화. 짧은 통화가 끝나고. 담배를 피우던 여자는 몸을 탈탈 털면서 남자에게 묻는다. “담배 냄새 나요?” “조금” 여자는 다시 몸을 탈탈 턴다. 맥주잔에 담긴 물로 입을 헹군다. 다시 몸을 탈탈 턴다. “이젠 어때요?” “거의 가셨네요.” 여자가 웃는다. “아이가 담배 냄새를 싫어해서…” 여자는 서둘러 집으로 떠난다. 남자는 탁자 밑으로 구부러진다.

2.
몸이 담긴 관을 흙으로 덮으면서 남자는 생각한다. “죽은 사람을 땅 깊숙이 묻는 이유는, 혹시라도, 절대로, 살아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야.” 구덩이가 모두 메워지고. 확실히 하기 위해, 남자는 심혈을 기울여 땅을 다진다. 양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와서 흠뻑 뿌린다. “모든 틈새가 막혔다.” 남자가 담배를 물고 하늘을 본다. 먹구름. 비가 오리라. 완벽하다.

3.
관 속에서 눈을 뜬 아이. 보이는 게 없다. 다리에 떨어지는 물방울의 차가움.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울 수도 없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간격이 짧아진다. 이제는 얼굴에도, 손등에도 물방울이 떨어진다. 숨이 막혀 온다. 춥다. 울 수도 없다. 눈을 감는다. 감으나 뜨나 보이는 게 없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성당 열심히 나갈께요. 성금으로 오락실 가서 미안해요. 하나님 살려 주세요.” 조용히 울부짖자… 멀리서 소리가 들린다.

4.
점점 더 가까워지는 소리. 누군가 아이 대신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땅의 울림이 아이의 뒷통수와 등에 느껴진다. 숨이 더욱 막혀 오고. 졸립기 시작한다. “난 아직 못해본 게 많아요… 하나님 살려 주세요…” 그 순간 갑자기 관과 함께 몸이 떠오른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고. 육중한 기계음이 들린다. 또 다른 누군가가 외친다. “천천히 천천히 이쪽으로!, 이쪽으로… 관을!” 공중에서 몇 번을 덜컹대던 관이 바닥으로 내려 앉는다. 아이는 관뚜껑이 뜯기는 둔탁한 소리를 듣는다.

5.
빛! 빛이다! 하나님! 사랑해요! 누군가 나를 다시 들어올린다. 애써 눈을 떠 쳐다보려 했지만 너무 눈이 부셔서 차마 볼 수가 없다. 이제야 모든 것이 확실해진 느낌. 나는 울 수 없었던 울음을 맹렬히 터뜨린다. 그러자 눈부신 그가 담담하게 말한다. “사내 아입니다. 남편 분은 이리 오셔서 탯줄 자르세요.”
2010/10/21 21:28 2010/10/2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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