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2

2011/06/02 05:41 / My Life/Diary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의 극지 탐험가들이 부딪히는 최대의 도전은 ‘아침에 제때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빙판 위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아침에 제때 일어나는 것이라고.

  슬리핑백에 누워 있는 개운치 못한 즐거움과 일어나는 데 대한 두려움은 전형적인 알프레드 히치콕표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쾅”하는 소리 자체에 긴장하는 게 아니라 “쾅”하는 소리가 날까봐 긴장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것도 물론 고통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안 좋은 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두려워하며 누워 있는 것이다. 잘 만든 공포영화에서도 그렇듯이 가장 큰 위험은 뭔가를 미루는 데 있다.

  나는 일어나야만 한다. 단순히 5분을 미루고 5시간을 미루고의 문제가 아니다. 슬리핑백에서 나오는 것은 원정에서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는 대체로 쉽다. 대개 내가 두려워한 일들도 (그것이 종상이든 물집이든 피로든) 일단 시작하고 나면 두려워했던 만큼 나쁘지 않다. 사실은 그 반대일 때가 많아서 도전을 만나면 그런 것들은 무의미해진다. 게다가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자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있든, 전날 밤에 무엇을 했든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일은 제때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다르게 사는 사람도 많이 알고 있으며,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자려다가는 가정생활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고 직장에서 야망을 실현하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버릇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바꿨다. 그럴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나는 ‘극한의 상황’에서 규율을 익혔다. 날씨가 추워지면 스키 잠금 고리의 수리를 미루고 싶어지고, 항해 도중 밤에 갑자기 바람이 일면 갑판으로 올라가 키를 잡기보다는 그대로 누워 있고 싶어진다. 배가 고프면 내일 먹을 식량을 조금 떼어먹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집에서라면 그대로 누워 자버리거나 기분 나쁜 전화를 미룬다고 세상이 뒤집히지 않지만, 광풍이 휘몰아치는 바깥세상에서는 자신을 속이려고 할 때마다 즉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확실히 나는 집에서보다 광활한 바깥세상의 경험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게다가 일단 거치적거리는 일을 먼저 해치웠을 때 그날 하루가 더 상쾌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 최초로 남극점에 도착했던 로알드 아문센은 “슬리핑백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이유가 가장 그럴듯한 날이, 하루를 시작하고 나면 가장 일이 잘 풀리는 날”이라고 했다.

  지난 겨울에 나는 아내와 코펜하겐에 있었다. 월요일 아침, 우리는 노르웨이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기 위해 시청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날씨는 매섭게 추웠고, 그 시간이면 늘 그렇듯이 기차역 바로 뒤에는 노숙인 몇 명이 웅크린 채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덴마크 판 <빅이슈>지를 팔러 다가왔다.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판매가격의 50퍼센트가 그것을 파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잡지였다. 우리는 시간이 많았던 터라 거기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온몸이 꽁꽁 얼어 있었고 자신을 잡아주지 못한 사회를 원망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머가 넘쳤다. 그와 비교하자면 나는 세상에 속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살고 있음에도 나는 ‘사람은 전부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렸다.

  나는 결국 그 사람이 파는 잡지를 샀다. 첫 페이지에 꿈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꿈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럼에도 꿈을 말로 표현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설문 대상자인 노숙인 중독자들은 대부분 꿈이 없다고 답했다. 나 역시 가끔 내 꿈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가 힘들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잔인하게도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당신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세요.”

ㅡ 엘링 카게,『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pp.67~69, pp.243~244

  생각조차 싫다.

  꿈도, 술도, 나도, 사람도, 아침도, 싫고.

  보들레르는, 잠에 빠져드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좀 누워야 겠다.
2011/06/02 05:41 2011/06/02 05:41
TAGS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Trackback RSS : http://www.fallight.com/rss/trackback/2145

Trackback ATOM : http://www.fallight.com/atom/trackback/2145


« Previous : 1 : ... 119 : 120 : 121 : 122 : 123 : 124 : 125 : 126 : 127 : ... 768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