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09

2007/08/09 23:02 / My Life/Diary

학력위조가 성행인가 보다. 아니, 성행이었나보다.
학원가 강사들 상당수가 출신 대학을 속였고, 강단에 선 교수들조차 그렇다고 하니.

언젠가 도올은 대학을 나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과거에는 책을 구해 볼 수 있는 곳이 대학 도서관 뿐이었지만
요즘엔 어떤 학술서적이건 구해볼 수 있다면서.
어쨌든 그런 그도 화려한 학위 증명서를 갖고 있다.
그저 학위를 따 온 것이라고 늘상 말하곤.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최소한 녹여내야 할 서적이 50권이라고 한다.
한 분야의 책 50권만 열심히 읽어내면 최소한 석사 학위 정도의 실력은 되는걸까.
나는 된다고 본다, 그러나 상아탑의 석사들은 턱도 없다- 할런지도.

뭐 한글만 읽을 줄 알면 굳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소위 손에 꼽히는 진보주의자, 노동운동가들 중에는 유독 S대 출신이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S대 폐지 운동하는 사람들 중에도 S대 출신이 많다는 것이다.
7-80년대 노동운동으로 옥살이를 하고 현재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 중에도 많은 수가 그렇다.
노동운동 x 옥살이 x 정치의 확률은?

그들은 가르치려든다.
너희들은 우매한 중생들이니 내가 의식 개혁을 해줘야 한다는, 뭐랄까 사명감이랄까 자아도취랄까.
신분을 속이고 막일에 침투해도, 사회적 기득권을 포기한다해도
가르치려드는 그 의식은 생생히 살아남아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건,
가르침을 원하지 않는 이들까지 가르치려 들 때다. 그러나 그들에겐,
가르침을 원하지 않는 건 무지몽매하기 때문이고 기존의 부덕한 사상에 경도된 때문이므로
가르침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가르쳐야 할 첫번째 대상이 된다.
그들은 가르침에 속박되어 있다.
아무리 자신을 낮추어도 불쑥불쑥 엘리트 주의에 경도된 내면이 드러난다.
말하자면,
그들이 스스로를 낮추는 일은
엘리트 중에서도 보다 월등한 엘리트이기 위한 필수적인 태도다.

재밌는 건,
그들은 '고전'과 '객관'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그들에 의해 조장되는 측면이 크다.

그들의 학문은 과거에 확고한 기반을 두고 있다.
과거에 논의된 오만가지 결과물의 총체를 체에 걸러낸 그것을 습득하는데
그들은 수만 시간을 들였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오만하고 자존심이 높다.)

그들에겐 그것이 '고전'이고 '객관'이다.
그리고 이는 학위라는 상징으로 권위를 획득한다.

믿고 있는 바와 합치되지 않을 때
그들은 상대방을 미성숙한 사고체계의 소유자, 의식개혁의 객체 정도로 여긴다.
그리고 그들의 고전을 토대로 획득한 객관성을 무기로
신랄한 비판을 해나간다.

문제는
고전은 단지 그들만의 합치된 결과물일 뿐이고
아무런 객관성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래 인문학은
인간이 학문을 규정한 데서 시작되었는데
급기야 그들에 의해, 학문이 인간을 규정하게 되었다.
인간이 학문을 규정할 때는 주관적이었는데
학문이 인간을 규정할 때는 객관적이 되버린다.

덕분에 학력만으로도 업그레이드 완료된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위조된 학력이라 할 지라도
학문이 인간을 규정하는 이상.

진정한 엘리트, 세상을 변혁하는 힘이 되고 싶다면
자기의 말이 아닌
상대의 말로 하길 바라며.


100분 토론, 평론가 J씨의 히스테리적 주둥이질과
수 많은 헛점에도 듣고만 있는 상대편 패널들, 그들.
최근 학력위조 파문
기존의 인문학 위기에 관한
짬뽕. 뭐 어쨌든 나도 대학국물 좀 먹었으니.

2007/08/09 23:02 2007/08/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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