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06

2008/09/06 23:08 / My Life/Diary
저번 주 일요일이었다. 버거킹에서 피클을 뺀 치즈 와퍼를 사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버스가 너무 안 와 기다리는 와중에 서울대입구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을 묻는 아가씨에게 길을 알려주고는 道를 묻는 커플 한 쌍을 만난 게, 바로 저번 주 일요일이었다.

길을 묻는 아가씨에게는 바보 같게도 돌아서 가야 하는 길을 알려줬다. 간단하게 가까운 거리의 지하철역을 알려주면 되는데, 지하도를 통해 (그것도 지하철 지하도를 통해) 길을 건너야 찾을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을 알려줬다. 왜냐면 우리가 버스 정류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를 묻는 커플은 마치 만화 속 등장인물인 듯, 다만 그냥 넘겨버릴 수도 없고 찢어낼 수도 없을 뿐이었다. 이 분야의 종사자들이 사람 간보려 툭툭 던지는 죽은 말들이 너무 싫어서 삼만팔천대씩 때려주고 싶었지만 내가 맞을까봐 그럴 수 없었다. 그 정도 맞으면 아마 도를 깨닫게 될 텐데... 그들에겐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그렇게 시달리다 만원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 다 식어버린 와퍼를 꺼내어 한 입 물었는데, 피클이 들어 있었다. 일요일에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다.

월요일 아침에는 지하철을 거꾸로 탔고, 목요일에는 부트 디스크가 맛이 갔다. 금요일 저녁에는 서랍 속의 편지들을 모두 다시 읽어보고는, 찢어서 버렸다.

1997년.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었다.

피클을 싫어하기엔, 이제 너무 많은 나이가 된 것이다.
2008/09/06 23:08 2008/09/0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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