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10

2010/04/10 04:16 / My Life/Diary
지난 밤에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언젠가 그에게서 왔던 참 즐거웠던 편지 하나가 기억났다. 그것은 단지 흰 종이 위에 ‘죽었니?’ 라고 써 있었다.
전혜린, 1964. 7. 23.

바퀴벌레 하나 죽이지 않는 이가 자신을 죽일 리 있나. 삶보다 끔찍한 일이 바로 죽음. 우리는 기어코 죽고 나서도 죽음 후의 삶을 또 살지 않는가. 하나의 빗방울이 바다로 떨어지면 그것은 빗방울인가 바닷방울인가? 다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죽음은 삶보다 끔찍하다.

안병무 선생에 따르면 삶이란 가능성의 총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주요한 가능성은 죽을 수 있는 가능성. 이 가능성은 매우 특이해서 가능성을 발현시키는 순간 가능성이 소멸된다. 가능성은 가능성으로 존재할 때만 가치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뻑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서는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비가 내린다. 구름이 떠다닌다. 그러나 내리지 않는 비, 떠다니지 않는 구름이 있던가. 일생의 부조리를 직시하는 이에게는 네 가지 길이 있다. 스스로 부조리가 되는 길, 부조리 속에서 죽어버리는 길, 부조리 속에서 미쳐버리는 길, 부조리를 떠나는 길. 이 갈림길 앞에서 안절부절 세월만 보내는 최악의 인생을, 나는 산다.

이것 저것 정리하고 보니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금 백만원 가량만 남았다. 여름이 되기 전에 끝낼 수 있을 듯.

…『기형도 전집』이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어떤 획기적인…

2010/04/10 04:16 2010/04/10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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