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13

2010/06/13 23:12 / My Life/Diary
“죄가 깊은 자는 사랑도 깊다.”

ㅡ『청춘의 착란』(다자이 오사무), p.277

지난 주는 기분이 없었습니다. 이유 없이 몸이 고단했고, 악몽을 두 번. 충격적인 사건은, 집에 가는 버스 중간에 내려 맥도날드 딸기 쉐이크를 사러 갔는데ㅡ 팔지 않았던 것. 션 뉴튼을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션 뉴튼은 맥도날드 코리아 사장으로 영수증에 찍혀 나오는 이름입니다. 면상을 한번 보고 싶네요.)

맥도날드 앞에 있는 서점에서 우연찮게, 최근 번역된 다자이 오사무의 서간집을 찾아 사들고 와선 첫 장을 펼쳤는데… 저 말이 있지 뭡니까. “죄가 깊은 자는 사랑도 깊다.” ㅡ 그날은 도저히, 읽을 엄두가 안 나서, 책을 덮고 잠에 들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6월 19일 태어나서 6월 13일 죽은 사실… 아니, 6월 13일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저수지에 투신, 서른 아홉번째 생일인 6월 19일 시체가 떠오른 사실, 아십니까? 아, 오늘이 투신한 그날입니다. 술을 먹고 싶은데 취할 용기가 나질 않아 가게에서 청주 댓병을 사서 작은 컵에 반쯤 담아 마셨습니다. 한동안 기분이 없었는데, 비가 내리고 바람이 치고 술이 들어가니 즐거운 절망감이 미지근하게 올라오네요.

“술을 마시고 싶지만, 그러나, 마셔 봐야, 더욱 즐겁지 않습니다. 취해서 잠에 들 뿐입니다. 저희가 살아 있는 동안, 늘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ㅡ p.269

요즘 부쩍, 다시 담배에 손이 갑니다. 마지막으로 태운 게… 그러니까 일 년 전쯤.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날. 그의 사상이나 행적에 존경심을 갖었다기 보다는 (전 그가 두 번 죽어도 개인적으로는 별로 슬프지 않을 겁니다), 당시 제 처지가 그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오산한 셈일세. 너무 만만하게 얕잡아 봤었어. 이제 와서, 주위를 둘러보면, 눈앞의 사실은 스무 살 무렵에 생각하고 있던 것과 전부, 완전히 달라져 있네. 분명히, 이런 게 아니었는데. 우리의 오산ㅡ 이것도 우리 불운의 근원일세.” ㅡ p.41

자살은 그저 하나의 선택입니다. 좋고 나쁨을 논하는 건 살아있는 자들의 유희일 뿐. 투신, 투신하니까 나로호가 생각나네요. 뒤집힌 촛불 하나가. 펑ㅡ.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더니 참으로 빠르게 떨어지데요. 그 순간 저는 느꼈습니다. 우리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어떤 운명 같은, 잠깐, 청주를, 반 컵 더.

“오늘은 바람이 거세어, 저는 얌전히 독서 등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서,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 와, 39세인 저도, 울고 싶어집니다.” ㅡ p.297

멍청하게 하루를 살고 있고, 내일도 그럴 겁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저 담담하게, 강요된 웃음으로. 이번 달이 지나면, 돈도 충분합니다. 선택권이 저에게로 넘어옵니다. 아무튼, 내일도 근면하게 살려고, 청주 반 컵을 입에 털고, 책을 덮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죄가 깊은 자는 사랑도 깊다.”

다만. 사랑하지 않기만을. 이게 가장 문제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2010/06/13 23:12 2010/06/1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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